필로덴드론 순화 실패 (네로우, 짜넘, 벌브 번식)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필로덴드론 커팅을 이렇게 많이 한 걸 후회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에 플로우마니 네로우와 파스타짜넘을 커팅했는데, 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순화가 완료되지 않은 개체들이 있거든요. 처음엔 "벌브만 있으면 다 살릴 수 있겠지" 하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막상 해보니 예상보다 훨씬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오늘은 제가 직접 겪은 순화 과정의 현실과, 품종별로 확연히 다른 순화 속도, 그리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분양 계획까지 솔직하게 공유해드리겠습니다.
파스타짜넘 순화, 생각보다 빠르지만 방심은 금물
파스타짜넘(Philodendron pastazanum)은 네로우에 비해 순화가 확실히 빠른 편입니다. 제가 9월에 커팅한 개체들 중 짜넘은 대부분 이미 새 잎을 2~3장씩 내고 뿌리도 화분 안에 가득 찼거든요. 탑수(top cutting)로 자른 개체는 기존 잎 2장을 유지한 채로 순화했는데, 벌브가 제 엄지손가락보다 굵고 뿌리가 상당히 많았던 덕분에 첫 잎이 나온 후 두 번째 잎은 제 손바닥보다 크게 나왔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순화 초기에 기존 잎들이 노랗게 변하면서 하엽이 지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게 바로 '산고의 고통' 같은 단계입니다. 식물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에너지를 새 촉에 집중하느라 기존 잎을 희생시키는 거죠. 저는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잎이 손상된 개체도 몇 개 생겼습니다. 습도를 높게 유지하고 흙을 촉촉하게 관리하다 보니 일부 개체는 중앙이 약간 녹기도 했어요.
제가 탑수를 쪼개지 않고 통째로 심은 이유는 큰 잎을 계속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잎을 한 장씩 나눠서 번식하면 뿌리가 쪼개져서 다음 잎이 작아지거든요. 그래서 탑수는 최대한 뿌리를 많이 살려서 큰 화분에 심거나, 수태로 감싸서 뿌리를 계속 촉촉하게 유지했습니다. 실제로 이렇게 관리한 개체들은 새 촉 줄기부터 굵게 나왔고, 잎 사이즈도 확실히 컸습니다.
플로우마니 네로우는 정말 오래 걸립니다
플로우마니 네로우(Philodendron plowmanii narrow form)의 순화 기간은 짜넘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깁니다. 제가 9월에 커팅한 네로우 개체들 중 상당수가 지금(2월)까지도 첫 잎조차 내지 못하고 있어요. 탑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체는 이제서야 빨간색 촉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도 네로우를 커팅해본 경험이 있는데, 그때도 뿌리 나오고 눈 트는 데 최소 6개월이 걸렸거든요.
네로우가 이렇게 순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식물 자체의 생장 속도가 느리기 때문입니다. 물에서 나오는 뿌리와 흙에서 나오는 뿌리가 다르기 때문에, 뿌리를 두 번 받는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수경재배(水耕栽培)로 뿌리를 내린 후 토양으로 옮기면, 다시 토양 환경에 맞는 뿌리를 새로 내야 하는 거죠. 이 과정에서 벌브 자체가 썩어서 죽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제가 유일하게 탑수로 자른 네로우는 상황이 좀 달랐습니다. 기존 잎 2장과 뿌리를 어느 정도 갖고 있던 상태라 순화가 빨랐고, 이미 두 번째 새 잎을 준비하고 있어요. 첫 잎 사이즈도 상당히 컸습니다. 탑수는 확실히 뿌리를 갖고 있는 만큼 안정적이더라고요. 반면 벌브만 남은 개체들은 아직도 촉이 나올지 말지 지켜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 벌브 단일 삽수: 순화 기간 최소 6개월 이상, 탈락률 높음
- 탑수(뿌리 포함): 순화 기간 3~4개월, 첫 잎 사이즈 큼
- 바텀(모체 쪽): 순화 빠름, 잎 사이즈는 랜덤
한국식물원예학회에 따르면(출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열대 관엽식물의 순화 과정에서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 기간이 품종마다 크게 다르며, 특히 필로덴드론 속(屬) 식물은 뿌리 활착까지 평균 4~8주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제 경험상 네로우는 이보다 훨씬 오래 걸렸습니다.
순화 성공률을 높이는 실전 관리법
제가 가능하면 얘네들은 습도가 제일 높은 공간에서 키웠습니다. 다행히 밖으로 나와 있는 공중뿌리(氣根)가 마르지 않았는데, 이게 순화 성공에 정말 중요한 요소더라고요. 공중뿌리가 솜털처럼 보송보송하게 유지되면 뿌리 활착이 훨씬 빠릅니다. 그래서 뿌리가 나와 있는 부분은 복토를 해서 절대 마르지 않게 관리했습니다.
뿌리가 들썩거리면 순화가 엄청 느려집니다. 저는 분재 철사로 벌브를 꽉 묶어서 절대 흔들리지 않게 고정했고, 가능하면 자리도 웬만하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물도 저면관수 방식으로 줘서 최대한 이 아이가 뿌리를 팍 박을 때까지는 건드리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이제는 이렇게 흔들어도 뿌리도 안 흔들리고 흙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자랐습니다.
작은 화분에서 시작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물을 자주 줘야 해서 귀찮을 수 있지만, 물을 자주 먹어줘야 뿌리가 빨리 나오거든요. 뿌리가 화분 끝까지 가득 차고 새 잎이 나온 다음에 화분을 옮기는 게 안정적입니다. 순화 중에는 벌레가 생길 위험이 있어서 저는 약을 주기적으로 쳐줬습니다. 흙이 굉장히 촉촉해야 하다 보니 벌레 생기기 딱 좋은 환경이거든요.
오프라인 분양을 결정한 이유
많은 분들이 온라인 분양을 요청하셨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택배 포장에 자신이 없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키가 이만큼 큰 개체들을 제가 포장해서 보낸다는 게 부담스럽더라고요. 게다가 영상에서는 조금 더 깨끗해 보일 수 있는데, 실제로는 약간의 구김이나 손상이 있는 잎들도 있거든요. 식물을 받아보시고 "영상이랑 다른데?" 하시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양을 한다면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려고 합니다. 제가 자주 가는 남사 에르베 플라워에 있는 "지금 아니고 지금" 야생화 매장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매장 사장님께서 작은 자리를 마련해 주시겠다고 하셨거든요. 날짜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는데, 2월 중으로 진행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3월은 꽃 시장 시즌이라 가게가 바쁠 때라 민폐일 것 같아서요.
네로우 중에서 촉은 나왔지만 잎이 아직 안 나온 개체는 지금 상태로 분양하기가 마음에 걸립니다. 잎을 보고 분양하고 싶은데, 그럼 잎이 언제 나올지 장담은 못 하겠네요. 짜넘은 이미 순화가 다 된 상태라 분양 가능한 개체가 많습니다. 오프라인으로 오시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저도 압니다. 지방에서 오시기엔 거리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요. 그래도 직접 보고 선택하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댓글로 편하게 의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개월 동안 순화를 해보면서 느낀 건, 정말 많이 번식하지 마시라는 겁니다. 한두 개 정도만 소규모로 하시는 게 훨씬 관리하기 편합니다. 저처럼 한 번에 여러 개를 커팅하면 습도 관리, 물 관리, 약 치는 것까지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요. 특히 네로우는 순화 기간이 정말 길어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촉이 나오고 새 잎이 펼쳐지는 걸 보면,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도 번식에 도전하신다면,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진행하시길 바랍니다.